홍콩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커지면서 세계 금융 중심지인 홍콩에서 자본과 인력이 이탈하는 '헥시트(Hexit)' 우려가 커지고 있다. 헥시트란 홍콩(Hong Kong)과 엑시트(exit)의 합성어로 해외 투자 자금의 홍콩 대이탈을 뜻한다. 최근 중국의 홍콩보안법 강행과 미국의 홍콩 특별 지위 박탈 조치 등으로 홍콩 정세가 불안해지면서 세계 금융 중심지였던 홍콩의 위상도 흔들리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9일(현지 시각)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제정 강행에 대응해 홍콩의 특별지위 박탈 절차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지난 28일 중국의 홍콩보안법 제정 강행과 관련해 "중국은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원칙을 일국일제(一國一制)로 대체했다"며 "홍콩의 특별 대우를 박탈하는 절차를 시작하도록 행정부에 지시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1992년 제정한 홍콩정책법에 따라 홍콩을 자치 지역으로 규정하고 무역, 외환 거래, 기술 이전, 비자 발급 등에서 중국 본토와 다르게 우대해왔고, 이런 특별 대우 덕분에 홍콩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 달리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아시아권을 대표하는 금융 허브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구체적인 제재 내용을 밝히지는 않았다. 시간을 갖고 중국의 향후 조치를 살펴보며 대응 수위를 조절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홍콩에 대한 우대 철회가 발표되자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중국인은 미국에 당하지 않을 것" "(미국의 홍콩 조치에 대해) 충분히 준비돼 있고,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크게 반발했다. 인민일보 역시 중국의 구체적 조치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과 중국이 힘겨루기를 하면서 서로를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미·중의 패권 다툼이 홍콩으로 옮아붙으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홍콩에선 돈과 인재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작년 6월 홍콩 내 민주화 시위가 발생한 이후 홍콩 부자들과 외국인들은 약 50조원(400억달러) 예금을 홍콩에서 인출해 나갔다. 홍콩 최고 부자 리카싱(李嘉誠) 전 청쿵(長江)홀딩스 회장은 총재산 중 절반 이상인 17조원을 홍콩에서 빼내 영국·캐나다 등지로 옮겨놓은 상태다. 영국 경제분석기관 캐피털이코노믹스는 "미국이 홍콩의 특별 지위를 박탈한다면 국제 비즈니스 허브로서 홍콩의 지위는 빠르게 무너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피터 처크하우스 홍콩 포트우드캐피털 이사는 "자본 이탈은 홍콩 내 부동산 등 수요를 약화하는 부작용으로 연결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최근 홍콩에선 자영업들이 파산하고 상업용 건물 매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아파트 가격은 전년보다 40% 이상 하락했다.
홍콩 내 인력 유출도 가시화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지는 "1997년까지 홍콩을 통치했던 영국 정부가 홍콩 인구의 약 40%에 해당하는 290만명에 대해 영국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지난 30일 보도했다.
영국은 앞서 중국이 홍콩 보안법을 제정할 경우, 영국 해외 시민 여권을 가진 홍콩인 30여만명에 대해 영국 체류 가능 기간을 6개월에서 12개월로 연장하고, 영국 시민권을 획득할 기회를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적용 대상을 1997년 7월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되기 전에 태어난 290만명으로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홍콩인들에게 미국 영주권을 제공하자"며 "(홍콩) 젊은이들에게는 베이징에 저항할 용기를 부여할 것"이라고 했다.
홍콩에서는 실제 이민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31일 이민 컨설팅 업체를 인용, 중국이 홍콩 보안법을 제정하기로 결정한 이후 "이전에 볼 수 없는 수준"으로 이민 상담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민 상담 업체 CEO인 앤드루 로는 이 신문에 "홍콩 보안법 제정이 결정되고 다음 날에만 100통 넘는 전화를 받았다"며 "사람들은 당장 내일이라도 떠날 수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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